2023.09.26.
JPANews
─ 18호, 기억과 역사의 터 ─
Archivist’s Talk
   한가위가 성큼 다가온 9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가을이 익어가는 넉넉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과 바람에 일렁이는 코스모스, 그리고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의 경치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nbsp이번 주 〈주간 증평〉의 주제는 ‘기억과 역사의 터’입니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다양한 역사적 장소를 기록과 함께 소개합니다.  오늘의 증평은 …
2023.09.26.
JPANews
─ 18호, 기억과 역사의 터 ─
Archivist’s Talk
   한가위가 성큼 다가온 9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가을이 익어가는 넉넉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과 바람에 일렁이는 코스모스, 그리고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의 경치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nbsp이번 주 〈주간 증평〉의 주제는 ‘기억과 역사의 터’입니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다양한 역사적 장소를 기록과 함께 소개합니다.  오늘의 증평은 …
기억
윗장뜰마을
윗장뜰마을 주민대표 김기종
Play Video
 “ 윗장뜰마을은 증평 최초 원도심 내 분리 독립마을입니다. 마을의 기원은 1912년경부터입니다. 원 고유 명칭은 ‘장뜰’이라고 합니다. 1930년경부터 70년대까지는 주거, 상업, 서비스 중심지 마을이었습니다. ”
김기종 님 인터뷰 중에서
윗장뜰 기억지도
  지금은 사라진 윗장뜰마을의 역사적 장소를 표기한 주민들의 기억지도입니다. 2022년에 처음 그린 이 지도는 마을에 대한 정보를 보완하여 2023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주민들의 기억을 하나로 모아 다시 그린 윗장뜰 기억지도에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함께 담겨 있어 누구나 마을의 역사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윗장뜰 최초의 공동우물 자리
  사람이 생활하기 위해선 물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해주던 공동우물은 마을의 대소사와 가정의 안부를 전하는 아낙들의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 샘을 대청소하는 시기에는 우물을 다 퍼내고서 두레박 타고 우물 안으로 사람이 들어갔어요. 밑에 돌이나 지저분한 것을 전부 싹 끌어내면서, 물도 퍼가면서, 우물 밑을 아주 깨끗하게 청소했었지. 일 끝나면 막걸리도 한 잔씩 나눈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
정순필 님 인터뷰 중에서
금 방앗간 자리
  금 방앗간 자리는 일제강점기 전후 사금(砂金)을 정련(精鍊)하던 곳입니다. 절구로 곡식을 찧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금을 채취한다고 해서 주민들은 이곳을 금 방앗간 이라고 불렀습니다. 현재 그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숙박 업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 금 방앗간은 현재 ‘그랜드모텔’ 자리에 있었어요. 방앗간 구조는 한 10평 정도 크기에 기계가 도르래를 이용하여 물을 부어가며 쇠절구 마냥 돌을 빻았어요. 그 앞에 물이 고이는 연못이 있었는데 금 방앗간에서 나온 돌가루를 아낙네들이 놋그릇 닦는 데 사용했어요. ”
정진숙 님 인터뷰 중에서
술도가 자리
  윗장뜰 마을에는 직접 술을 제조해서 판매하던 양조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이 일제강점기부터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지금은 술도가 자리에 광성주유소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지금 광성주유소 사무실 자리가 양조장 자리였어. 큰 가마솥 네 개를 놓고 수작업을 했는데 그때는 어려서 주전자를 가지고 가서 술을 받아다 먹고 그럴 때예요. 6.25 사변 전부터 윗장뜰에 생긴 거예요. 윗장뜰에는 ‘술도가’ 하면 하나밖에 없었어. 왜냐면 장동으로 해서 증평이 번화했잖아. ”
정진숙 님 인터뷰 중에서
 “ ‘술도가’라고 불렀지. 마을에서 잔치를 하건 동네 회의를 하건 거기서 막걸리를 꼭 시켰어. ”
박해진 님 인터뷰 중에서
증평 최초의 기름집 자리
  현재 광성주유소 자리에는 증평 최초의 석유 판매점이 있었습니다. 석유를 드럼통에 보관하고, 되박과 됫병으로 계량해 판매하던 곳입니다. 지금은 기름집의 장소성을 이어받은 주유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저장시설은 없었고, 도라무통(드럼통)에다 담아 세워놓고 굵은 호스로 기름을 빼가지고 기름 담는 네모진 통(철제 기름통)에 한 말씩 차에 넣어주고 그랬어. ”
정순필 님 인터뷰 중에서
윗장뜰 마을회관
  1972년, 증평읍 최초로 2층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주민들의 찬조금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윗장뜰 마을회관’으로, 주민들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 낸 결실이었습니다. 마을회관에는 마을 발전과 단합을 위한 주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 옛날에는 윗장뜰이 증평의 중심지였어. 여기는 옛날 분들도 많지. 저 밑으로는 타지에서 와서 사시는 분들도 좀 많고. 발전이 되니까 외지에서 와서 집 짓고 사는 분들이 많죠. ”
정순필 님 인터뷰 중에서
 “ 예전에는 윗장뜰 마을회관 앞에 주민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가 있었어요. ”
윗장뜰마을 주민 인터뷰 중에서
증평 최초의 행정청사 자리
  윗장뜰 마을에는 증평지역 최초의 행정청사가 있었습니다. 옛 증평읍사무소는 증평의 역사적, 지리적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도안면 방면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자 충주와 음성에서 들어오는 증평 북부의 관문이었습니다. 읍사무소 이전 후 이 자리는 예식장으로 활용되다가 최근 철거되었습니다.
 “ 읍사무소가 처음에는 지금 군청자리, 그 앞에 조그마하게 있었어요. 역전에 있다가 협소하니까 궁전예식장 자리로 이전했었지. ”
최건성 님 인터뷰 중에서
증평 최초의 도정공장 자리
  도정공장은 증평 장평뜰과 근방 지역의 벼를 도정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시설입니다. 증평역 근방에 자리잡고 있어 벼를 운반하기 수월했습니다. 현재 도정공장 자리에는 장동이발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60여 년간 장인정신으로 운영되고 있는 장동이발관은 증평의 또 다른 역사입니다.
 “ 도정공장은 제가 어려서 일정 때 철도가 생기면서부터 있었어요. 여기 ‘질벌쌀’이 유명해서 일본 사람들이 도정해서 일본으로 가지고 갔어요. 그때는 벼를 개인이 찧으러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마차를 갖다가 마차꾼들이 실어서 왔어요. 벼를 말려가지고 찧어서 일본으로 가져가고 그랬어요. ”
정진숙 인터뷰 중에서
증평 최초의 극장 자리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증평 최초의 극장입니다. 1950년경부터는 6.25 참전 상이용사단체가 창고형 극장으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혼란과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지만, 주민들은 영화를 보면서 삶의 애환을 달랬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이후에는 원도심에 제일극장과 증평극장이 개관을 했습니다.
 “ 옛날에 극장 건물은 창고였어. 6·25 사변 나고 제대한 상이용사들이 영사기 가지고 상영을 했지. 극장에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지만 우리는 그때 돈이 없어서 우리 또래들이 화장실로 해서 째비쳐서 몰래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어떤 사람은 들어가다 똥간에 다리가 빠져서 똥구린내가 나고 그랬다고. ‘콩쥐팥쥐’하고 ‘장화홍련전’, ‘춘향전’ 그런 거 많이 했지. 그때는 변사가 와서 화면 돌리면서 마이크 들고 끊어가면서 했어. ”
정진숙 님 인터뷰 중에서
 “ 나는 옛날에 증평공고에서 ‘원술랑’이란 연극을 본 적이 있어. ”
박해진 님 인터뷰 중에서
역사
한일연초수출주식회사 증평공장
이병춘 前 공장장
Play Video
 “ 천주교 성당에 병원이 있었어. 그때 외국 수녀들이 와서 의사를 했어. 주변에는 변변한 병원들도 없었고, 거기만 신식병원이었어. 우리 식구들도 몸이 아플 때 항상 거기 갔고, 나는 우리 어머니를 리어카에다 모시고 가봤지. 진료를 아주 잘 봤어, 그때. ”
이강식 님 인터뷰 중에서
 “ 여기서는 천주교수녀병원이라고 해. 그전에는 살기도 어려우니까 증평에는 병원이 없었어. 물론 청주 나가면 병원이 있었지만은 또 차타는 것도 어렵고. 메리놀병원은 싸고, 또 약이 좋았어. 외국서 갖다가 약을 쓰니까, 약 자체가 좋았지. 또 극빈자는 무료로 해줬고. 그래서 각지에서 왔어. 각지에서 오니까 환자가 밀리면 번호표를 줬어. ”
박영순 님 인터뷰 중에서
증평역
이효림 증평버스터미널 매점 주인 & 김윤회 증평군 공무원
Play Video
 “ 담배를 조리하고 기계에다 가공을 시키고 또 포장을 해서 수출하는 데까지 수많은 인력이 필요한 거죠. 그 인력들은 전부 이 증평지역에서 나왔습니다. 아마 증평지역에서 증평공장에 안 다닌 사람이 없을 거예요. 우리 한일연초회사는 정말로 전 직원이 아주 화기애애하게 똘똘 뭉치는 멋진 공장이었어요. 해외 바이어들이 오면 우리 공장이 시스템도 잘된 공장이고 운영을 잘한다 그랬죠. 세계에서 최고라고 그랬어요. ”
이병춘 님 인터뷰 중에서
증평수녀의원
요안나 수녀 (Jean Maloney, 문애현)
Play Video
 “ 옛날에는 증평역이 자그마했어요. 역이라고는 해도 대합실이 지금 시외버스터미널 반도 안됐었지. 근처에는 여인숙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때는 증평역을 군인들이나 청주로 학교 가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했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보따리 들고 왔다 갔다 했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
이효림 님 인터뷰 중에서
한일연초수출주식회사 증평공장
이병춘 前 공장장
Play Video
 “ 담배를 조리하고 기계에다 가공을 시키고 또 포장을 해서 수출하는 데까지 수많은 인력이 필요한 거죠. 그 인력들은 전부 이 증평지역에서 나왔습니다. 아마 증평지역에서 증평공장에 안 다닌 사람이 없을 거예요. 우리 한일연초회사는 정말로 전 직원이 아주 화기애애하게 똘똘 뭉치는 멋진 공장이었어요. 해외 바이어들이 오면 우리 공장이 시스템도 잘된 공장이고 운영을 잘한다 그랬죠. 세계에서 최고라고 그랬어요. ”
이병춘 님 인터뷰 중에서
증평수녀의원
요안나 수녀 (Jean Maloney, 문애현)
Play Video
 “ 천주교 성당에 병원이 있었어. 그때 외국 수녀들이 와서 의사를 했어. 주변에는 변변한 병원들도 없었고, 거기만 신식병원이었어. 우리 식구들도 몸이 아플 때 항상 거기 갔고, 나는 우리 어머니를 리어카에다 모시고 가봤지. 진료를 아주 잘 봤어, 그때. ”
이강식 님 인터뷰 중에서
 “ 여기서는 천주교수녀병원이라고 해. 그전에는 살기도 어려우니까 증평에는 병원이 없었어. 물론 청주 나가면 병원이 있었지만은 또 차타는 것도 어렵고. 메리놀병원은 싸고, 또 약이 좋았어. 외국서 갖다가 약을 쓰니까, 약 자체가 좋았지. 또 극빈자는 무료로 해줬고. 그래서 각지에서 왔어. 각지에서 오니까 환자가 밀리면 번호표를 줬어. ”
박영순 님 인터뷰 중에서
증평역
이효림 증평버스터미널 매점 주인 & 김윤회 증평군 공무원
Play Video
 “ 옛날에는 증평역이 자그마했어요. 역이라고는 해도 대합실이 지금 시외버스터미널 반도 안됐었지. 근처에는 여인숙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때는 증평역을 군인들이나 청주로 학교 가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했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보따리 들고 왔다 갔다 했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
이효림 님 인터뷰 중에서
/ 특 집 화 보  /
주민의 기억으로 재현한 그림 기록
그림 이정수
옛 엽연초생산협동조합과 엽연초재건조장, 한일연초수출주식회사 증평공장
옛 증평성당 및 증평수녀의원
옛 증평역
/ 사 진 포 스 터  /
기억과 역사의 터
Translate
주간증평
18호
Archivist's Talk

한가위가 성큼 다가온 9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가을이 익어가는 넉넉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과 바람에 일렁이는 코스모스, 그리고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의 경치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이번 주 〈주간 증평〉의 주제는 ‘기억과 역사의 터’입니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다양한 역사적 장소를 기록과 함께 소개합니다.

오늘의 증평은 주민들이 일구어 온 역사적 장소이자 역동적인 삶이 펼쳐지는 일상적 공간입니다. 증평의 문화와 경제, 공중보건은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도시화‧산업화의 열풍이 증평의 모습까지 바꿔놓았습니다. 과거의 증평 모습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고즈넉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주간 증평〉 18호에는 주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증평 최초 극장과 옛 읍사무소, 술도가(양조장), 기름집(석유판매집) 등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 이야기를 수록하였습니다. 증평의 기억과 역사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과 함께 살펴보면서 과거 증평읍 윗장뜰 마을 사람들이 영위했던 일상생활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함께 이번 호에서는 증평에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 준 ‘엽연초 공장’과 공중보건의 토대를 마련했던 ‘증평수녀의원’, 근대적 역사의 서막을 알렸던 ‘증평역’ 이야기도 함께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증평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세군데 역사적 장소들이 다양한 기록과 주민들의 기억의 힘으로 생동감 있게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긴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면서 풍요로운 추석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주간 증평〉 19호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9월 26일 화요일
〈주간 증평〉

/ Archivist's talk /

한가위가 성큼 다가온 9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가을이 익어가는 넉넉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과 바람에 일렁이는 코스모스, 그리고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의 경치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이번 주 〈주간 증평〉의 주제는 ‘기억과 역사의 터’입니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주민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다양한 역사적 장소를 기록과 함께 소개합니다.

오늘의 증평은 주민들이 일구어 온 역사적 장소이자 역동적인 삶이 펼쳐지는 일상적 공간입니다. 증평의 문화와 경제, 공중보건은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도시화‧산업화의 열풍이 증평의 모습까지 바꿔놓았습니다. 과거의 증평 모습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고즈넉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주간 증평〉 18호에는 주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증평 최초 극장과 옛 읍사무소, 술도가(양조장), 기름집(석유판매집) 등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 이야기를 수록하였습니다. 증평의 기억과 역사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과 함께 살펴보면서 과거 증평읍 윗장뜰 마을 사람들이 영위했던 일상생활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함께 이번 호에서는 증평에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 준 ‘엽연초 공장’과 공중보건의 토대를 마련했던 ‘증평수녀의원’, 근대적 역사의 서막을 알렸던 ‘증평역’ 이야기도 함께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증평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세군데 역사적 장소들이 다양한 기록과 주민들의 기억의 힘으로 생동감 있게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긴 연휴 동안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면서 풍요로운 추석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주간 증평〉 19호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9월 26일 화요일
〈주간 증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