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내용참 고 내 용 증평향토문화연구회가 향토문화와 역사를 발굴하기 위해 2005년 9월에 옛 사진 공모전을 하였다. 출품된 사진 중 기록성이 우수하다고 판단된 21점을 선정하였는데, 그중 하나이다. 당시 공모자, 사진의 등장인물, 내용에 대한 정보가 기록화되지 않았다. 연도 또한 정확하지 않다. 울어바위 마을은 울어바위가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바위가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 하며 당시 안음현감 연충수(延忠秀)께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친 사실이 동국여지승람에 전하고 있으나 1970년에 한글학회에서 간행한 에 의하면 주민들이 '우러바위'라 하지 않고 '우래바위'라고 발음하므로 마을 이름을 '우뢰바위'로 기록하고 있다. 우뢰바위라는 이름은 벼락바위를 한자로 기록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으며 벼락 바위는 벼랑바위가 변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마을이 이성산의 산자락에 있어 벼랑이 많은 지형이며 이 마을의 자연 지명에 '벼락골'이라는 이름이 아직도 전해오고 있다. 1910-1926년 36번 국도와 (구)충북선 철도가 놓이면서 바위는 매몰 파손되었고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1914년 인근 마을과 함께 화성리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