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때부터 살던 신동리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현재까지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집안에서는 증평읍내에서 방앗간, 찻집, 목욕탕 등 줄곧 상업에 종사했다. 증평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해방을 맞이하였고, 해방 후 부친은 초대 읍의원에 당선돼 지역을 위해 봉사하였다.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은 농협미곡창고 바로 맞은 편에 살고 있어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은 떨어진 탄피를 엿장수에게 가져가 엿을 바꿔먹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대웅산업(현 대웅제약) 합작회사를 운영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해서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하였고, 퇴임한 다음 지금까지 5년 째 증평읍 신동리 성로경로회장을 지내고 있다.
증조부때부터 살던 신동리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현재까지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집안에서는 증평읍내에서 방앗간, 찻집, 목욕탕 등 줄곧 상업에 종사했다. 증평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해방을 맞이하였고, 해방 후 부친은 초대 읍의원에 당선돼 지역을 위해 봉사하였다.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은 농협미곡창고 바로 맞은 편에 살고 있어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은 떨어진 탄피를 엿장수에게 가져가 엿을 바꿔먹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대웅산업(현 대웅제약) 합작회사를 운영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해서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하였고, 퇴임한 다음 지금까지 5년 째 증평읍 신동리 성로경로회장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