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의 번영과 독립을 향한 주민들의 노력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증평역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1923년, 증평역은 처음 청안역이라는 이름으로 개통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주민들은 증평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역사의 이름이 ‘청안역’으로 지어진 것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1945년, 드디어 주민의 의견에 따라 청안역은 ‘증평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1963년, 주민들은 지속적인 증평의 번영을 꿈꾸며 ‘증평번영회’를 만들었습니다.
1990년, 주민들의 노력은 마침내 ‘증평출장소’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증평읍과 도안면을 합친 충청북도 직할출장소가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군개청의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963년, 주민들은 지속적인 증평의 번영을 꿈꾸며 ‘증평번영회’를 만들었습니다.
1990년, 주민들의 노력은 마침내 ‘증평출장소’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증평읍과 도안면을 합친 충청북도 직할출장소가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군개청의 단초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1966년, 증평시민회에 약 50명의 젊은이들 모여 ‘증평 자치단체 독립 선언’을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민자치를 위한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날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증평을 기초자치단체로 만들기 위한 공감대가 단결의 힘으로 발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을 ‘잘 살게’ 만들려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증평 주민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합니다.
증평을 기초자치단체로 만들기 위해 국회로 찾아갔습니다. 여러 번의 설득 끝에 맞이한 마지막 기회, 당시 ‘자치단체 설립추진위원회’의 사무국장이었던 이종일 씨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습니다.
“다른 모든 곳에서는 자치단체장을 직접 주민이 뽑는데, 우리는 증평군의회도 없고 출장소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증평은 ‘지방자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전국이 다 지방자치를 하는데 증평만 소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국회 전문위원이 답했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도와 드리겠습니다.’